본문 바로가기

Review/서평

[가재가 노래하는 곳] 세밀하게 그려낸 인물과 정서

반응형

 <가재가 노래하는 곳>2019년 작가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된 델리아 오언스가 출판한 작품이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가 될 때까지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해온 만큼 그녀는 1950년대 미국 남부 해안가의 빈민촌 습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엮어내었다. 어린 나이에 홀로 습지에서 생활하는 ‘카야 클라크’의 이야기,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하는 그녀의 삶 말이다. 그러나 그 삶이 결코 아름답지는 않다. 평화로운 자연과 달리 차별로 가득한 인간사회에서는 동물들의 먹이사슬보다 더 복잡하게, 더 무자비하게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으며 생태계를 형성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습지에서 살아가는 한 소녀를 통해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면서도 마을에서 발생한 체이스의 살인사건을 통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950년대와 빈민촌이라는 배경의 특성이 잘 드러나지만, 그와 동시에 시대와 상관 없이 인간 모두가 느끼는 ‘외로움’이라는 정서를 심층적으로 다룬 이 소설은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장르를 조화롭게 결합했다고 생각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1. 총평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주인공 ‘카야’에게 온전히 감정이입하여 나의, 혹은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의 어린시절부터 죽음까지 경험하고 온 듯한 느낌을 줬다. 어쩔 때는 내가 카야가 되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지만, 어쩔 때는 카야가 마치 내 딸인마냥 성장해가는 모습에 기특해하고 뿌듯해하며 말이다. 소설 속에는 독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요소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건 바로 인물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아주 촘촘하게, 점진적으로 드러내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7살의 카야로 시작했다. 아직은 주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7살의 나이에 가족을 한 명씩 떠나보내고 사회와 동 떨어진 늪에서 살아가는 아이로 말이다. 그랬기에 10살이 넘어서까지 알파벳도, 자신의 이름(‘카야는 가족이 부르는 별칭 같은 것이다)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가 점점 성장하는 모습은 굉장히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또한 대부분의 이야기가 카야의 시점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소설 속 세상을 묘사하는 화자의 서술은 서술그 이상의 의미였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성숙해지는 화자의 모습을 보며 독자로서 카야라는 인물 자체에 더욱 철저히 몰입할 수 있었다.

 

 

 

2. 제목의 의미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구절은 자연이 자연 그 자체로 남아 있는 곳, 아름다운 자연 자체의 모습을 가진 장소를 의미한다. 사실 이 말은 소설 전체에 들어 몇 번밖에 나오지 않는데, 모두 카야의 꿈을 펼칠 수 있을 만한 장소를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등장한다. 그녀가 일생 동안 바란 건 그저 자연과 함께,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딘지도 모르는 미지의 장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카야의 일생이 담긴 책의 제목이 가재가 노래하는 곳인 이유는 카야가 평생 동안 소망한 자연과의 삶을 상징하기 위함이 아닐까?

 

 

3. 흥미로운 전개 방식: 시간의 흐름

 

이 책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바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이었다. 소설에서는 크게 두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다. 7살 카야의 성장과정에 초점을 맞춘 1952년의 이야기, 그리고 마을의 살인사건에 초점을 맞춘 1969년의 이야기. 전자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쭉쭉 이어지다가 마침내 1969년 후자의 이야기와 시기가 맞물린다. 흥미로운 점은 전자의 이야기, 즉 카야의 성장을 다루는 이야기는 시기가 맞물린 이후로도 계속 진행되지만, 69년의 사건을 다룬 이야기는 곧바로 끝난다는 것이다. 마치 살인사건이 시계 추처럼 가운데서 중심을 잡고 있고, 카야의 일생이 시계의 침처럼 계속 움직이는 것 같았다. 69년의 이야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지만, 카야의 인생의 중심, 혹은 변곡점이 되어 그녀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인생이 사건에 영향을 줬든 받았든 상관 없이 결국에는 그녀의 삶과 69년의 사건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4. 작가의 의도: 외로움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1) 외로움

 

인간에게 외로움이란 필연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어도 한 번쯤은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 것 같은 외로운 순간을 경험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주제가 되는 외로움은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심층적으로 다루고자 한 외로움은 이렇게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으로서의 외로움이 아니라, 삶의 뿌리가 되어 자리 잡힌 정서로서의 외로움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책 속의 시공간적 배경은 1950년대 빈민촌이다. 즉 인종차별과 전쟁의 후유증이 가득하며 개인의 부가 개인의 가치가 되는, 그래서 무시와 조롱을 달고 사는 비인간적인 시대였다. 이런 시기에 외로움은 아마 사회적 편견을 받는 모든 이들의 곁에 있었을 것이다. 백인이라고 해도 가족과 친구가 없어 놀림 받은 카야, 가족도 친구도 있지만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멸시 받은 점핑, 그 외에도 당대 사회를 살아간 책 속의 모든 편견의 대상들 말이다.

 

 

2) 외로움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1) 타인에 대한 불신

 

책의 뒷부분에 갈수록 변화하는 카야의 행동만 봐도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자신을 떠난 엄마가 언젠가는 꼭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였지만 점차 주변 사람이 한 명씩 떠나자 이제는 그 누구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2) 타인에 대한 기대  

 

하지만 이 불신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 불신이 신뢰로 바뀌진 않지만, 일말의 가능성은 남겨둔다. 예를 들어 집에 있는 낡은 가구를 갈아야 할 때도 카야는 엄마의 상징이 되는 물품은 남겨두거나, 새로운 사람이 등장할 때 쉽게 호기심을 가지고 몰래 지켜본다. 그러나 이건 비단 카야이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고 싶은 카야이더라도 그녀는 인간이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인간이기 때문에 잔잔한 자연과 달리 변덕적인 인간에게 끊임없이 기대와 좌절을 반복하며 아픔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우리 곁에 항상 있지만 한 번도 심층적으로 탐구해본 적 없는 정서, ‘외로움’. 역설적으로 인간보다 자연을 더 가까이에 둔 순수한 카야를 통해 외로움이 가진 속성에 대해 알 수 있는 소설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