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는 2017년 손원평이 지은 소설로, 제 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출판사 ‘창비’에서 주는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소설은 감정표현불능증을 앓고 있는 ‘윤재’를 주인공으로 하는데, 이 소년이 바로 책 표지 한 가운데 있는 무표정한 얼굴의 주인이다. 사실 책의 제목과 표지가 너무 강렬해서 한 번도 성장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책을 잡아 들어 그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1. 총평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아몬드>는 정말 술술 읽히는 책이다.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은 만큼 인물도, 줄거리도, 전개 방식도 매력적이다. 사실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쓴 성장 소설이다보니 결말 자체에 대한 궁금증은 없었다. 흔히 성장소설이라 함은 주인공의 해피 엔딩을 통한 성장을 의미하니까. 하지만 그 해피엔딩이 정확히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 윤재가 해피엔딩으로 가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칠지에 대해서는 독자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할 만 했다. 특히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지 못하는 윤재와는 달리, 감정이 차고 넘쳐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는 곤이의 등장 이후에는 두 주인공의 독특한 개성이 빚어낼 호흡에 기대감을 가지고 200쪽을 쭉쭉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건 책 자체의 평가와는 조금 동 떨어지지만, 만약 드라마 ‘나쁜녀석들’을 봤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주인공이 사이코패스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이코패스 자체로 등장한다는 점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정상인의 범주와 관련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말하는 정상인은 무엇이며, 감정표현능력이 곧 사이코패스의 기준이 되는지, 그렇게 기준에 부합한 사이코패스가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만 하는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소설. 정상인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2. 제목<아몬드>의 의미
1) 편도체
여기에서의 아몬드는 우리 뇌에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편도체’를 가리킨다. 윤재가 감정표현불능증을 앓게 된 근본적인 원인, 선천적으로 작게 가지고 태어나 전두엽과 잘 연결되지 않는 기관이 바로 그 편도체, 아니 ‘아몬드’인 것이다.
2) 작은 것
그러나 단순히 모양이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의 제목이 되었을 리 없다. 책을 모두 읽고 난 뒤 작가의 의도를 유추해보자면, 작가는 편도체의 작은 크기를 강조하기 위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몬드를 사용한 게 아닐까 싶다. 고작 손톱만한 그 작은 것 때문에 인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감정’에 특이점이 발생하고, 사회에선 사이코패스로 낙인 찍히는 슬픈 상황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작은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몸에서 아몬드는 극히 일부만 차지할 뿐이다. 아몬드보다 더 크고 많은 기관들로 이뤄진 인간은 사회를 살아가면서 충분히 변화할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윤재 역시 주체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아몬드를 바꿀 수도 있다. 이 변화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주고자 아몬드에 비유한 것은 아닐까 한 번 추측해본다.
3) 작은 것 중에 작은 것
위에 말한 대로 아몬드 하나만을 놓고 보면 우리의 손톱만큼 작다. 하지만 아몬드 여러 개를 놓고 보면 어떨까? 내가 매일 집에서 챙겨 먹는 아몬드만 봐도 제각각의 크기를 하고 통 안에 담겨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게 아니니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편도체도 마찬가지다.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편도체의 크기가 사람마다 같을 수는 없다. 윤재의 편도체는 원래도 아몬드만큼 작은 크기보다 조금 더 작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몬드를 보고 ‘이상할 만큼’ 작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왜 윤재의 작은 편도체를 보고는 이상하다고, 비정상이라고 하는 것일까? 바로 여기에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담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과연 정상인의 범주는 무엇이며, 그렇다면 그 범위에 속하게 만드는 정상인의 기준은 무엇일까?
3. 정상인의 기준
1) 감정과 도덕
정상은 특별한 변동이나 탈 없이 있어야 할 상태에 바로 있는 것을 말한다(네이버 국어사전). 그렇다면 정상인은 무엇일까? 책 속의 사회에서는 바로 ‘감정’이 정상인의 주된 기준이 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타인의 정상 여부를 판단할 때 과연 감정만이 중요하게 작용할까? 조금 뜬금없지만 치매 환자를 곁에 둔 사람들을 대상으로 환자가 평소와 다르게, 즉 비정상처럼 보이는 때가 언제인지 알아본 연구가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자의 행동이 통상적인 도덕적 기준에 어긋날 때 가장 비정상처럼 보인다고 한다.
사실 감정과 도덕은 다르다. 감정이 넘쳐나더라도 그 넘쳐나는 감정을 부도덕한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 책의 주인공 윤재와 곤이만 봐도 그렇다. 외로움, 허전함 등의 감정으로 가득 차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곤이, 가족이 눈 앞에서 살인을 당해도 별 다른 동요가 안 되지만 엄마가 알려준 ‘지침’(미소짓는 것처럼 안면근육을 조절하는 방법, 상황에 따라 ‘올바르게’ 반응하는 방법)을 따르는 윤재. 과연 이 둘 중에 더 ‘정상적’인 것은 누구일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자신은 물론 남에게까지 해를 끼치고 있는 인물은 기계인간 윤재가 아닌 곤이이다. 하지만 나 역시 읽으면서 곤이에게는 미움과 동시에 연민을 느겼지만, 윤재에게는 연민보다 두려움을 느꼈다. 만약 정상인의 기준을 도덕성으로 잡았다면 오히려 윤재를 정상인으로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정상인의 범주는 정상인의 기준을 무엇으로 보냐에 따라 좁아질 수도, 넓어질 수도, 아예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2) 상대방의 이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면 우리는 그 비정상을 ‘틀렸다’ ‘이상하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정상의 범주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범주 내의 것이 ‘다르다’ ‘특별하다’고 표현하기 시작한다.
결국 인간을 정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온전히 감정 혹은 도덕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상대의 감정적, 도덕적 특성을 바탕으로 그 인간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즉 ‘이해’에 있다. 그 어디에서도 - 심지어 독자인 나에게도 - 이해받지 못한 윤재는 처음으로 심 박사에 의해 ‘다름’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받은 윤재는 놀랍게도 차츰 변화해 간다. 곤이도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윤재에게 이해받은 곤이는 차츰 세상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며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고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 이렇게 정상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이해가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맨 처음 곤이와 윤재가 남들과 조금 ‘더’ 달랐던 이유는, 다시 말해 주변 사람들에게 ‘비정상’처럼 여겨졌던 이유는 이들만의 독특한 아몬드를 ‘이해’해주는 자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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