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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서평

[페인트] 작가의 통찰력과 상상력이 만든 사회 비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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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인트> 2019년 이희영 작가가 출판한 소설로,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사실 제10회 수상작인 <아몬드>를 통해 창비청소년문학상 자체에 대한 신뢰를 쌓았기에 잔뜩 기대를 하고 책을 집어들었다.

페인트, 이희영

 이 소설은 국가적 관리 하에 아동이 입양과 부모를 선택하는 미래의 대한민국 사회를 다룬다. 임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하는 부모와 육아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이를 유기하는 부모가 공존하는, 그로 인해 국가가 대신해 일정 기간 동안 아이를 키워주는 사회 말이다. 이러한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국가의 ‘NC(Nation’s Children) 센터’이다. 한편 NC 센터는 19세의 아동까지만 관리하기 때문에 NC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입양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런 압박에 연연하지 않는 주인공 제누 301’을 통해 작가는 작가는 입양과 입양아동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1. 총평

 

 <페인트>는 우리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유쾌한 상상력을 합해 입양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다룬 소설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책 속의 설정이 현실과는 동 떨어진 상상의 세계 같아 보였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현재 사회의 문제가 너무도 잘 반영되어 보였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비현실적 설정이랄까? 보통 소설을 읽을 때 난 줄거리를 궁금해하며 주로 인물과 사건에만 몰입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구현한 소설 속 세계가 너무도 설득력 있어 보여 탄탄한 줄거리보다도 배경 자체에 더 큰 관심이 갔다.

 

 

 

 

2. 제목의 의미

 

 제목 페인트입양의 절차상 거쳐야 하는 부모들의 면접(parents’ interview)을 의미한다. 수없이 많은 부모들의 면접을 봐야 하는 NC 출신의 아이들이 자연스레 만들어낸 일종의 은어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면접의 대상이 아이가 아닌 부모라는 점에서 이 제목은 입양의 선택권이 부모가 아닌 아이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에는 아이들이 자주 사용하며 페인트라는 은어를 따로 만들어낼 만큼 부모의 자격을 엄격히 심사하는 과정이 존재한다. 물론 애초에 이 과정이 필요할 만큼 사회에 유기된 아동이 많고, 사람들의 입양 목적이 대부분 국가의 경제적 지원인 걸 보면 소설 속 사회의 밑천에는 모순이 깔려있다. 그러나 아무리 막장에 다다른 이런 사회이더라도 입양의 필요성이 대두된 상황에서 국가는 그 주도권을 어른이 아닌 아이에게 제공함으로써 현재 우리 사회와는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작가가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페인트를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곧 입양과 입양아동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비판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3. ‘입양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소설은 실제 우리 사회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는 입양을 하나의 대단한 일로 칭송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NC 센터에서 입양하는 부모에게 각종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이는 입양이 곧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본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사실 입양은 가정을 형성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다른 여러 가지 방법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 일인 것이다. 다른 여러 가지 방법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 입양은 특별히 칭찬할 이유도, 놀라워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대단한 선행이라고 여기는 시선은 입양 본연의 의미에 부적합하다.

 

 또한 입양은 남에게 은폐되어야 할 일이라고 보는 편견이 있다. 마치 NC 센터 소속의 아동을 입양하면 NC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처럼 이제껏 우리나라의 양부모는 많은 경우 입양신고 대신 출생신고를 해왔다. 그러나 입양은 숨겨야 할 문젯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입양으로 형성된 가족의 기능을 방해하고, 가족의 일원이 된 아동의 권리 또한 침해한다고 생각한다.

 

 

4. ‘입양 아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작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반영할 뿐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을 가미하여 이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려냈다.

먼저 NC출신 아이들의 이름은 각자 태어난 달과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 개인의 정체성을 가장 먼저 상징해야 할 이름이 태어난 달과 숫자로 되어 있는 사회 속에서 과연 어떤 아이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을까? 소설 중간 주인공은 특정한 달의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고 말한다. 이 말이 얼마나 큰 슬픔으로 내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크리스마스 같은 연중행사의 설렘과 행복이 수많은 아키’, 즉 생명의 유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소설 속 생명이 가지는 의미는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의 결과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 같아 보였다. 가령 ‘크리스마스 같은 연말행사가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같이 말이다.

 

 

 

 

 또한 입양에 대한 차별과 편견으로 가득한 사회 속에서 아이들은 선택을 강요 받을 수밖에 없다. 20세가 되면 센터를 퇴소해야 하고, 결국 NC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데, 과연 어떤 아이가 진정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입양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는 현실에서 입양은 하나의 구제 수단에 불과하다. 어려서부터 버림받아 불필요한 아픔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센터 소속이라는 이유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사회라면 그 누구도 선택다운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페인트>는 현실의 입양 문제를 반영하고 있는 만큼 현재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시사한다. 아무리 소설 속 사회와 같이 국가적 지원이 풍부한 시대에 진입하더라도 입양에 대한 국민의 인식 수준이 낮다면 입양 본연의 의미가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섬세한 통찰력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미래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 소설, <페인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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