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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서평

[시녀이야기] 디스토피아를 살고 있는 한 시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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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녀이야기>는 1985년 마거릿 애트우드가 발표한 장편소설로, 최근 34년만에 발표한 후속작으로 부커 상을 받은 <증언들>의 속편이다. 이 책은 21세기 중반 세계적인 전쟁과 환경오염, 그리고 각종 성병으로 인해 출생률이 급 저하되자 새로운 남성 권력층은 길리아드라는 전체주의 국가를 배경으로 한다. 길리아드는 가부장제와 성경을 근본으로 두며 평범하게 살고 있던 국민들을 성별에 따라 각기 다른 계급으로 나누는데, 주목해야 할 건 바로 여성의 분류이다. 여성은 과거의 직업과 임신가능 여부에 따라 ‘아내’, ‘하녀’, ‘시’' 등의 계급으로 나뉘는데, 이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브프레드’가 바로 생식의 기능만을 목적으로 하는 ‘시녀’ 계급의 여성이다. 소설은 인권이 유린되고 차별을 일삼았던 과거 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새로운 미래 사회, 그것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맞물리는 21세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소설 <시녀이야기>

1. 총평

 폭력, 억압, 위선, 불합리.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단어로 수식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 바로 길리아드이다. 올리브 헉슬리의 <멋진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 등 이전에도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은 많이 봤지만, 이토록 일말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은 처음이다. 길리아드는 그야말로 극강의 통제로 이루어진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세계 멸망의 결정적 이유를 성병과 출산율 저하로 보기 때문인지 과 관련해서는 통제의 정도가 극에 달한다. 예컨대 남녀는 만나서도, 눈을 마주쳐서도, 심지어 쳐다봐서도 안 되며, 법만으로는 규제되지 않을 것 같자 얼굴과 몸의 형태를 가리는 모자와 긴치마까지 의복으로 규정지어버린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나라 구조가 불합리하게 바뀌었고, 모든 사람이 그 구조를 따르고 있는데, 한낱 시민 한 명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출산율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자살도 막기 위해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을 모조리 금지해버린 마당인데 말이다. 겉으로는 망해가는 국가를 살리기 위한 혁명적인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몇 명의 권력을 위해 국민의 권리를 모두 뺏어버린, 그야말로 일말의 자유도 허용되지 않는 세상에서는 모두가 아닌 걸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어진다.

 

2. 21세기 중반의 미래사회

1) 성경 중심의 기독교적 사회

 길리아드는 21세기 중반에 비밀 수뇌 조직 야곱의 아들들’(=12명의 사령관)을 중심으로 현재 미국의 땅에 건국된 국가이다. 이들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피임과 낙태가 쉬워지자 초창기 구약시대처럼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기독교적 사회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분명 미래로 나와있지만, 의복에 대한 묘사(긴 드레스), 대화에 등장하는 언어(라틴어)를 보고 있으면 마치 중세시대를 보는 듯 하다. 하지만 길리아드는 성경을 중시한다는 명목 하에 이제껏 자유와 평등을 위해 힘써온 인류의 노력을 모두 파괴했다. 남녀평등을 위한 노력이 무색하게 동시적 일부다처제를 들여왔고, 여성은 출산의 수단이자 남성의 소유물로 전락했다. 주인공 이름 오브프레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높은 직위의 남성에게 아이를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시녀들은 오로지 임신과 출산을 위해 제 3자의 집에 들어가고, 곧바로 남성의 이름 앞에 소유격 오브(of)’를 붙인 임시적 이름을 가지게 되며, 임신을 하고도 정상적인 아기를 낳아야만 여생을 누릴 수 있다. 다시 말해 과거 중세시대, 아니 초창기 구약 시대에 여성이 가진 조금의 자유조차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다.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 中 시녀 의복

2) 전체주의 국가

 한편 길리아드는 전체주의 국가이다. 전체주의란 개인이 전체 속에서 존재가치를 갖는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국가권력이 국민생활을 간섭, 통제하는 사상(네이버 국어사전)을 의미하는데, 대표적으로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가 있다. 사실 세계사를 봤을 때 대표적인 전체주의 국가들은 집단의 이익을 강조한다는 명목으로 일인의 통치자가 독재하는 양상을 띄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파시즘은 어려운 경제 환경에 처한 국가의 성장을 목적으로, 나치즘은 대공황 이후 실직자가 많아진 국가의 부흥을 목적으로 등장했다. 길리아드 또한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의 발달 외에도 전 지구적인 전쟁, 환경오염, 각종 성질환 등으로 출생률이 감소하자 하나의 해결방법으로 새롭게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여느 전체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그 의도는 퇴색되었고, 결국에는 소스의 권력층을 중심으로 하는 비합리적인 위계질서만이 남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모든 권리를 침해하는 질서 말이다.

 

3) 작가의 의도

 그렇다면 작가는 왜 글의 배경을 21세기 중반(당시 기준 미래)으로 설정했을까? 아마 소설 속 불평등한 사회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극단적으로 경고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해결책을 향한 우리의 절박함은 커져만 가고, 그 절박함을 틈 삼아 말도 안 되는 해결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논리의 강적은 무논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사리분별능력이 약해진 상황에서는 헛소리가 달콤한 소리가 되고, 이는 곧 자발적인 가스라이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독자로서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도 배경이 매우 어색했지만, 그 말도 안 되는 규칙이 당연한 소설 속 사회를 계속 보다 보니 곧 여기는 이런 곳이지하고 수긍하게 되었다.

 

결국 작가는 적응의 동물인 인간에게 ‘미래’ 사회 이야기를 함으로써 비판적인 사고를 잃지 않도록 주의를 주려는 것 같아 보인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맏아들이고 있는 위험이 극단에 치달으면 결국에는 이와 같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현재의 우리가 미래에는 시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이 사회를 살아야 한다고 경고하는 메시지는 아닐까?

 

3. 말과 글의 통제

 길리아드에서 모든 것은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인간생활의 기본요소인 의식주부터 그렇다. 주인공 오브프레드의 경우, 시녀 신분에 맞는 옷이 정해져 있으며, 특정 부부에게 배정된 동안에는 출산 전까지 아내의 명에 따라먹고 잘 수 있다(남편과는 잠자리만 할 뿐 사적인 대화도, 눈 맞춤도 금지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없으면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도록 아주 기초적인 영역부터 차근차근 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비열하고도 영리하다고 느꼈던 것은 바로 말과 글의 통제였다. 말과 글은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표현 수단이다.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비슷한 사람들과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통로이다. 하지만 길리아드는 이 말과 글의 권리를 소수의 건국공신들에게만 부여함으로써 피지배층이 소통할 수 있는 경로부터 차단한다. 앞서 소설 속 배경이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인권의식이 없던 과거로 회귀한 것 같다고 했는데, 바로 여기에서도 이 모습이 잘 발견된다. 시녀들 간의 대화 내용을 검열하기 위해 거리 곳곳에 눈(비밀검열조직) 세력을 배치하고, 상점 간판에 글 대신 그림을 넣은 권력층이 마치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반대한 조선 양반들과 겹쳐 보인다. 심지어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할 이름이 누군가의 소유물로 규정되는 시녀들은 과거 개똥이’, ‘말똥이로 불리던 노비보다도 못하게 보인다. 이처럼 길리아드는 무지(蕪知)라는 수단을 통해 비합리적인 것을 합리화하고 부당한 것을 정당화한다.

 

 <멋진 신세계>, <1984>에 이어 어두운 현실의 이면을 드러내는 소설, 극단적인 설정과 비현실적인 국가관이 오히려 경각심을 일으키는 소설, <시녀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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