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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al Life/미술, 전시

하룬 파로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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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 하룬 파로키

Harun Farocki (9 January 1944 – 30 July 2014)


 2018년 10월 27일부터 2019년 4월 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하룬 파로키의 회고전 <What Ought to Be Done? Work and Life>은 독일의 미디어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인 그의 이미지와 노동에 대한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그의 생각은 한 장의 그림이나 사진이 아닌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영상을 통하여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영상 속 인물들의 반복적인 동작을 보면서 관객들은 그의 작품에 대해 사유하고 소통할 수 있다. 이번 회고전 주제로부터 그가 얼마나 우리 삶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 왔는지 느낄 수 있다. 그 요소 중에서도 이미지와 노동을 다루는 것이 이번 전시이다. 

 

Harun Farocki <What Ought to Be Done? Work and Life>


 회고전에서 그의 작품 중 9개 <평행 I ~ IV>, <인터페이스>, <110년 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비교>, <노동의 싱글 숏>, <리메이크 - 공장을 나서는 사람들>를 다루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 <평행 I ~ IV>과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주는 <노동의 싱글 숏>을 다루려고 한다. 

 <평행 I ~ IV>은 그 이름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총 4개의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놀라운 점은 그 영상 모두가 우리가 현실에서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은 컴퓨터로 만든 동영상을 의미하는데 그 동영상은 영화일 수도 있고 게임의 일부일 수도 있으며 요즘은 어디에나 접할 수 있는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평행 I ~ IV>에서는 Grand Theft Auto (GTA) 와 Assassin's Creed 를 비롯한 다양한 게임을 이용하여 가상세계와 현실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Parallel I (2012), Harun Farocki


 <평행 I>에서는 자연의 여러 현상들이 애니메이션과 영화에서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지에 초점을 마추었다. 과거의 컴퓨터 영상에서의 바람은 나무를 구성하는 픽셀을 한칸 혹은 두칸 이동시킴으로써 시청자에게 그 존재를 인식시켰지만 현대로 올수록 픽셀이 더 작아지고 촘촘해졌으며 표현기술 또한 발달하여 나무의 움직임을 더 잘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속의 바람, 불, 강물 그리고 구름은 영상을 제작하는 인식자의 입장에서 새롭게 구성되어 표현된다. 존재하는 그대로를 그대로 가져오는 영화와 달리 애니메이션은 재구성을 통하여 탄생하기 때문에 인식자의 역할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이는 기술의 발전이 아무리 이루어져도 변하지 않는 컴퓨터 영상의 속성을 관객으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Parallel II (2012), Harun Farocki


 <평행 II>에서는 <평행 I>의 현실의 재구성에서 더 나아가 현실을 모방한 게임 속 세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 아무리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게임 속 세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게임의 공간적인 제약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실에서 우리가 가기 힘든 공간은 있지만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은 없다. 하지만 저장된 데이터로부터 표현되는 게임 속 세상은 저장 용량의 한계가 존재하는 이상 어딘가에 그 세상이 끝나는 벽 혹은 공간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작품 속에서 인물은 게임 캐릭터로 다양한 공간의 제약에 접하는 상황에 반복하여 처하게 된다. 벽이나 산에 부딪치는 영상, 특정 지점을 넘어가면 바닥이 사라지는 영상이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경고 문구가 나오는 영상은 게임 속 세상의 유한성과 현실 모방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 하다.


Parallel III (2012), Harun Farocki


 <평행 III>은 <평행 II>의 연장선이다. <평행 II>에서의 제약된 공간을 통하여 카메라가 들어가고 그 카메라에서의 시점을 보여준다. 한정된 게임 속 공간을 벗어난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세상은 보드게임과 같은 판 위의 세상으로 그 판을 벗어난 공간에는 배경 연출을 위한 사물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룬 파로키는 지정된 공간을 벗어난 카메라의 시선에 집중하였으며 그 시선은 작품에서 현실 모방의 한계를 보여주는 도구로 쓰인다. 

 <평행 I ~ III>에서 게임 속 환경과 공간에 집중하였다면 <평행 IV>는 게임 속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게임 속 캐릭터를 생성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게임 속에서 생성된 캐릭터는 보통 가족이나 과거가 없다. 단지 생성된 그 시점에서 새롭게 탄생한 또 다른 자아다. 흔치 않게 가족이나 과거가 존재하는 게임 내 캐릭터도 있지만 그 가족과 과거는 모두 제작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평행 IV>는 이러한 주인공과 주변의 상호관계를 집중 조명한다. 주변에 주인공이 아닌 사람은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으며 그 역할에서 벗어난 행동은 하지 않는다. 게임 내에서 이성을 통해 판단할 수 있는 주체가 주인공 밖에 없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상호작용하는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들은 최대한 현실과 비슷하면서도 흥미를 유발하는 게임을 만들어왔고 이러한 시도는 주인공의 자유도를 높아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게임 내의 완전한 자유도는 없다. 만들어진 공간인 이상 여러가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제약조건이 있기 마련이다. <평행 I ~ IV>는 이런 한계를 보여준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한번 쯤 해본 사람이라면 이 네 개의 작품을 보는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평행> 시리즈와 다른 '노동'이라는 주제로 전시되는 작품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작품으로는 <노동의 싱글 숏>이 있었다. 총 17개의 도시에서의 노동 장면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별 감흥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생각은 3번째 도시의 노동을 감상하는 순간 달라졌다. 여기서 보여주는 노동은 우리 삶을 구성하고 있는 일부이다. 그 일부는 처음 한개의 도시에서는 그들만의 세상이었다가 두개, 세개 그리고 모든 도시를 보고나서는 우리 세상이 되었다. 초콜릿을 만드는 노동, 반죽을 하는 노동, 섬유를 만드는 노동, 의료 도구를 정리하는 노동을 비롯해 많은 노동을 포함한 다양한 도시에서의 영상은 우리에게 생계를 위한 노동이 아닌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로서의 노동의 집합체를 통해 그가 이 작품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노동에 대해 많은 고찰을 했는지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형태로든간에 노동을 하기 마련이다. 하룬 파로키는 그 노동이 무엇이던 간에 노동을 하는 주체는 세상이 돌아가기 위한 일의 일부를 감당하고 있는 것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적어도 이 작품에서 그가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특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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