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18년 8월 4일부터 2019년 2월 6일까지 열리는 <윤형근> 전시는 3관, 4관, 8관 3개 관에서 열리며 3, 4관은 지하 1층에, 8관은 2층에 위치해 있다.
윤형근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참혹했던 역사적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다. 196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는 ‘보도연맹’에 끌려가 학살당할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기도 했으며 1956년에는 전쟁 중 부역했다는 명목 하에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복역하기도 했다. 유신체제인 1973년에는 숙명여고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중 당대 최고 권력자인 중앙정보부장의 지원으로 부정입학한 학생의 비리를 파고들었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가기도 했다. 다사다난한 삶을 통한 이른바 ‘인생공부’를 거쳐 그는 만 45세가 되는 1973년에 본격적으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윤형근 ⓒ국립현대미술관
1부 프롤로그: 윤형근의 초기 작품 (1961-1973)
제 1부에서는 1960년대부터 1973년 본격적으로 미술 작업에 몰두하기 이전 그의 작품이 소개된다. 시기상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4·19를 겪은 직후였지만 윤형근은 숙명여고에 재직하며 다양한 드로잉과 소품을 제작했다.
1부 작품들은 4관으로 들어가는 길에 윤형근의 일생을 담은 연대기와 함께 쭉 나열되어 있다. 연대기와 함께 작품이 일렬로 전시된 이유는 아마 그의 생과 작품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1962년에서 1973년으로 갈수록 점차 그의 작품은 단순해진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순수’해진다. 비교적 다양했던 크기와 모양의 선들이 점차 원과 같은 곡선의 형태를 띠기 시작하고 1970년 이후에는 반듯한 직선 위주의 작품이 등장한다. 색채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작품에 들어가는 최소 열 가지의 색상은 다섯 가지, 세 가지, 심지어 두 가지 정도로 줄어든 듯 보인다. 이로부터 그가‘순수한 그림일수록 어렵다’ 는 생각을 기저로 점점 순수해지는 과정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윤형근, 1977년 일기).
왼쪽부터 순서대로 1962-65 / 1965-66 / 1970-73 시기의 작품 (출처: 예술 산책, https://blog.naver.com/bincent_kim)
시기상 한국은 암흑의 역사를 거치고 있었고 윤형근 역시 암흑 속 역경을 지속적으로 맞이했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켜 주변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삶의 태도가 그에게는 있었다. 마치 그림의 가장 기초적인 구성요소가 (선과 색) 모든 그림에 들어있듯이, 사회에는 복잡한 이해관계와 그에 따른 여러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삶의 기반이 되는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단순하고 본질적인 삶을 추구하고자 가장 ‘순수’한 그림을 추구한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다. 사실 “순수한 그림일수록 어렵다.” 이 말을 당시 사회를 연관 지어 생각해본다면, 온갖 꾸밈으로 덮인 세상에서 자신의 본질, 이 사회의 본질을 찾기 힘들다는 것과 유사하다.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순수한 그림처럼 인간을 그 자체로 존엄하게 만드는 독특한 본성은 바로 도덕성이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능력, 이성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능력. 기술에서 순수한 예술을 분리한 칸트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비슷한 시기에 정의된 인간과 예술의 순수함, 그리고 다른 것들과의 차이에서 오는 그 순수함의 원천은 이 시기 윤형근 작품의 토대가 되는 모토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도덕성이 곧 고통과 역경으로 직결되는 시대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모습을 지켜나가려는 작가의 신념 및 태도를 초기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제목미상>, 1966년경 ⓒ국립현대미술관 / <드로잉>, 1970 ⓒ국립현대미술관 / <청색>, 1972 ⓒ국립현대미술관
한결 더 단순한 작품을 다루는 2, 3부와의 가장 큰 차이는 색채이다. 특히 1970년 이후 몇몇 작품에서는 이전보다 더 밝고 진한 노랑, 파랑, 빨강, 분홍 등의 색이 사용된다. 색들의 배열을 이루는 곧은 직선 형태는 각각의 색을 더 눈에 띠게 만든다. 이후에 등장하는 무채색 위주의 그림과 달리 밝은 원색들의 조합은 작가의 희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참담한 현실에 맞설 수 있는 긍정적인 힘. 앞서 언급한 인간의 본질, 순수함과 연관 짓는다면 불합리한 현실을 비판하는 합리적인 인간의 이성과 도덕성을 의미할 수 있다. 윤형근은 곧은 직선처럼 꿋꿋한 자신의 신념을 바탕 그 자체로 존엄한 인간의 도덕성을 회복함으로써 밝은 희망의 빛을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2부 천지문: 하늘과 땅 사이 (숙명사건 이후 10여년간)
1973년 일명 ‘숙명여고 사건’의 발생은 윤형근의 일상과 예술세계를 바꿔놓았다. 당시 숙명여고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그는 중앙정보부장이 연루된 부정입학 비리를 폭로하다가 ‘반공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끌려갔고, 당국의 감시를 받기 시작했다. 이듬해 장인이자 예술 멘토였던 김환기마저 세상을 떠났다.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고 스승마저 떠나자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때부터 그의 작품에서는 밝은 색채를 대신하여 전형적인 ‘검은’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왼쪽부터 순서대로 <청다색>, 1976-1977 ⓒ국립현대미술관 / <청다색>, 1977 ⓒ국립현대미술관 / <다색>, 1980 (출처: 예술 산책, https://blog.naver.com/bincent_kim)
2부에서는 숙명사건 이후 10여년간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 시기에는 <청다색>이라는 제목을 가진 여러 개의 작품들이 등장하는데, 윤형근은 이 시기 작품을 ‘천지문’(天地門) 이라고 일컫는다.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천지’는 작품의 색에,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문’은 작품의 형태에서 드러난다. 하늘의 색 BLUE와 땅의 빛깔 UMBER을 섞으면 검은 빛에 가까운 물감이 나오는데, 이렇게 섞인 물감을 큰 붓에 찍어 ‘문’의 구도로 면포에 내려 그은 결과가 바로 <청다색>이다. 매우 단순하고 간결해보이지만 작품들은 마치 다른 차원으로 이끄는 문이 열린 것 같은 강렬한 끌림을 준다. 1980년 광주항쟁 직후에는 쓰러지는 인간 군상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기둥을 통해 항쟁 당시 고통 받은 국민을 표현한 것이다.
이미 여러 번의 역경을 겪은 그였지만 숙명사건은 그로 하여금 불합리적인 현실사회를 면밀히 깨닫게 하는 결정타였다고 짐작해본다. 이전까지는 암흑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사건 이후 현실을 바꾸기보다 이 현실이 지나간 또 다른 세상이 도래하기를 기대한 것은 아닐까? 그는 국가라는 거시적 체계를 넘어 학교라는 미시적 체계에서도 정치와 관련된 권력(power)으로 인해 법적인 압력을 받는 사태까지 경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쥔 희망의 끈은 당시의 현실에서 미래의 또 다른 세상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생각이 든다. ‘천지개벽’이라는 말처럼 태초에 하나의 혼돈체(混沌體)였던 하늘과 땅이 또 한 번 둘로 나뉘면서 제 2의 세상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그의 또 다른 희망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깜깜한 이 세상에 한 줄기에 빛이 내리듯, 하늘과 땅을 나타내는 어둡고 검은 색채 가운데 곧은 문이 등장함으로써 보다 따뜻하고 살 만한, 현실과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도피처를 뜻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순간의 안정감이 아니라, 이 현실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다시 말해 미래를 바라보며 현실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그만의 곧은 의지, 그리고 순수함이라고 본다.
3부 심간: 깊고 간결한 아름다움 (1980년대 후반 이후)
3부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제작된 윤형근의 후기 작품으로 이뤄진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더욱 간결해진다. 검은 계열의 색채는 보다 ‘순수한 검정’에 가까워지고, 물감과 함께 섞인 오일의 비율이 줄어들면서 화면이 한층 건조해진다. 이전에 비해 작품의 형태와 색채, 그리고 작업의 과정과 결과가 더욱 엄격하고 단순화되지만, 작품을 이루는 진한 검정색 앞에 서면 윤형근의 ‘확신에 찬 통찰’을 느끼게 된다. 거대하고 순수한 검정을 통해 인간 사이의 ‘관계’, 그 속에서의 ‘고독’, 그리고 ‘죽음’의 문제까지 다루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청다색>, 1990-1996 / <다색>, 1989 (출처: 예술 산책, https://blog.naver.com/bincent_kim)
이전의 색채가 검은색의 미묘한 변주였다면, 여기에서의 검은색은 ‘순수한 검정’ 그 자체이다. 여러 색의 결합을 벗어나 그 자체만으로 ‘검정’이라는 고유의 정체성을 가지는 명확한 색채. 즉, 검정으로서의 본질을 갖춘 ‘순수한 검정’을 의미한다. 또한 불분명한 경계선과 여러 번 덧대어진 자국들도 반듯한 검정색 직선들로 대체된다. 바로 이 곧게 뻗은 직선과 진한 검정색이 윤형근의 확신에 찬 통찰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마포의 대부분을 채우다 못해 비로소 꽉 채우기까지 하는 검정색 직사각형이 외부의 시련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그의 의지와 신념을 반영하는 것 같다.
이와 동시에 검정색은 천지개벽이 이루어지기 전 태초의 깜깜한 세상을 의미할 수도 있다. 1990년 우에다 갤러리 개인전에 전시된 작가의 노트에 따르면, 그는 “이 땅 위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시간의 문제이다. 나와 나의 그림도 그와 같이 될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된다.” 라고 말했다. 이를 고려해볼 때,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검은 색채는 당시의 암울한 현실이 아닌 본질적인 세상을 뜻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순수한 세상’인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이 원점으로 회귀한다는 세상의 진리를 파악하고, 자연적인 섭리 – 삶과 죽음 – 에 순응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처럼, ‘이 땅 위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당시 사회도 언젠가는 평화로운 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깊으면서도 간결한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요소는 명확한 검정 색채라고 생각한다. 깜깜한 끝을 나타내는 듯 보이지만 세상의 시작과도 연관되는 순수한 검정을 통해 결국 인간과 그 인간으로 이뤄진 사회가 겪게 될 필연적 관계, 고독, 죽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4부 윤형근의 세계
4부는 앞서 언급한 윤형근의 가치관 및 세계관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3년부터 2007년 작고할 때까지 거주한 서교동의 생활공간과 작업실을 전시장에 옮겨놓았다. 이 집은 그가 스스로 설계한 공간으로, 생전에 사랑했던 조선의 공예품들(목가구와 목기, 도자기와 토기 등), 추사 김정희의 글씨, 스승 김환기의 그림, 최종태의 조각, 그리고 도널드 저드의 작품 등이 함께 했다. 그와 관계 맺었던 인물들과 사물들, 윤형근 자신의 일기와 노트 등 각종 아카이브를 통해 윤형근이 추구했던 정신세계와 예술관을 엿볼 수 있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왼쪽부터 순서대로 윤형근의 아뜰리에 선반 / 작가 일기 / 전시실 내 영상, 1980 (출처: 예술 산책, https://blog.naver.com/bincent_kim)
이 중에서도 단연 기억에 남았던 것은 윤형근의 일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영상 속 윤형근은 자신의 작품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인품을 강조한다. 그는 “거짓말을 해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진리가 가장 멋있는 법이다. 화가 역시 인품이 되어야 진정한 화가이다”라는 말을 하며 화가의 진리는 결국 인품에서 온다는 신념을 드러낸다. 결국 초기부터 그가 꾸준히 추구한 ‘순수한 작품’은 작가의 ‘순수한 인품’이 반영된 작업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몇 번이고 면포 위에 검은색을 덧칠하는 예술 작업 과정, 그의 작품처럼 네모나고 반듯한 작업실의 생활 가구는 이러한 올바른 인품을 진리로 삼는 그의 가치관을 더욱 뚜렷이 한다.
크게 4부로 구성된 윤형근의 전시를 보며 그의 인생 자체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유신체제 등과 같은 고난과 시련을 겪어왔지만 그는 올곧은 인품을 가진 국민으로서 그 신념을 잃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고자 한 삶을 계속 이어왔다. 밝은 색채를 이용한 추상화에서부터 BLUE와 UMBER가 섞인 천지의 문,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깊은 검정과 직선까지 시기별로 작품의 특성은 조금씩 달랐지만 지속적으로 ‘순수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규격이 정해져 있는 듯이 반듯한 가구들 사이에서 간결한 색과 형태를 통해 ‘순수함’을 추구한 윤형근. 어찌 보면 끈질기다고도 할 수 있는 그의 강인한 의지가 있었기에 오랜 시간 자신의 신념을 꿋꿋하게 지키고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윤형근 화백, (출처: 예술 산책, https://blog.naver.com/bincent_kim)
그저 작품을 보고자 어느 날 한 번 방문한 미술관에서 한 사람의 깊은 인생 모토를 배운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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